1980년 유박영 내과의원을 개설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대학병원에서 1주일 입원을 하여 받던 종합검사를 3시간에 집중하여 끝내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최신자동화기기를 수입해 부설 ‘종합건강진단센터’를 세웠다.
1992년 종합병원인 ‘청박병원’을 설립하며 부설 ‘성인병센터와 ‘종합건강진단센터’를 표방하고 내과 진료를 하면서 삶의 질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당뇨병학회와 미국내분비학회를 시작으로 삶의 질과 관계되는 외국학회를 1인 한국인 참석자로 두루 다니며 운명적인 폐경과 골다공증 학문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997년부터 개인병원 의사로서 대한골다공증도움회를 대학교수들과 함께 창립해 일반인 대상 강연활동을 하였다. 당시는 폐경이나 골다공증에 대한 우리나라의 학회가 발족하기 전이었는데 외국의 학회장과 교수들의 소개로 인해 역으로 국내에서 찾아준 국내 폐경, 골다공증 관련 대학교수들과의 만남으로 그 후 대한폐경학회와 대한골다공증학회의 창립 당시부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며 지속적인 교류를 활발히 했다. 이렇게 되어 폐경과 골다공증이 내 삶의 중요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일찍이 엑티브에이징을 추구하며
폐경과 골다공증에 관계되어 국내외로 활동을 하는 사이사이 일관되게 추구해온 삶의 질에 필요한 항가령(Antiaging)진료를 정립하기 위해 목말라 했었다. 따라서 관련 뉴욕 보타니칼의학(Botanical Medicine), 기능의학(Functional Medicine), 안티에이징의학(Antiagaing Medicine)등 외국학회를 참석하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결국 20세기 말에 미국의 안티에이징학회에서 보톡스와 필러 강의 및 시술을 산부인과 의사가 하는 것을 보고 안티에이징이란 새로운 분야가 뜨면서 전문과가 무너지고 있는 세계적인 트렌드를 보았다. 그리고 그 동안 지속적인 삶의 질을 추구해온 관심 있는 의료분야에는 피부 에스테틱이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 즈음 장비회사를 통로로 메조테라피가 불란서에서 국내에 흘러 들어와 통증과 전신 질환 전반에 적용하여 시술을 임상에 적용하는 의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전통의학 의료인들로부터 사이비 시술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많이 받고 있었다. 그러나 ‘청박’은 불란서와 남미에서 피부에 적용하는 시술을 보고 피부미용에 기초가 됨을 감지하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과연 효과가 있는지 의료시술이 맞는지 직접 뛰어 들어 확인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래서 단지 미용시술에 적용할 목적으로 의욕적으로 파리 메조테라피 학회를 참석했었다. 그 후 프랑스 메조테라피의학회장이었던 쁘띠 교수가 주관한 보르도 메조마스터 코스에 참석해 집중적인 강의와 실습을 받고 메조마스터 과정을 이수했다.
그리하여 메조테라피가
히포크라테스에서 기원된 원리와 의학의 기본위에서 시행하는 시술이란 근거임을 보여주는 강의를 듣고 함께 피부의 해부학, 생리학, 약물학, 조직학, 신경학 등의 강의를 받는 기회를 가지며 메조테라피가 미용시술의 기초임을 확인했다.
이후 계속 관련되는 미국과 프랑스 학회의 강의를 듣고 실습을 통해 박피, 보톡스, 필러 등, 미용시술의 기본을 본격적으로 반복해 배우는 기회를 받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선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항가령센터와 안티에이징클럽을 표방하고 안티에이징의 필수인 피부미용시술을 시작했다.
그리고 안티에이징 진료를 좀 더 구체화하기 위해 여러 과가 있는 종합병원과 오랫동안 해 온 부설 종합건강진단센터를 접고 내과 피부과만 보는 ‘청박메디美’와 부설 안티에이징클럽으로 피부미용진료를 본격적으로 보기로 했다. 아울러 대한경피시술학회도 개최하고 각종 첨단레이저 기계를 구비하여 집중적으로 진료했다.
항상 앞서가는 컨셉으로 외롭게 진료를 개척해 가며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후배들에게 넘겨 줄 개념을 정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차에 갑자기 2011년 1월 18일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척추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후 1년 6개월의 긴 좌식(휠체어) 생활이 외롭고 지치는 재활기간이었지만 아주 조금씩이나마 회복되는 감을 느끼며 주치의들이 불안해했던 재기의 희망을 한 번도 잃지 않았다.
항상 앞서가는 컨셉으로
외롭게 진료를 개척해 가며 스스로 하고 있는 일을 후배들에게 넘겨 줄 개념을 정리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차에 갑자기 2011년 1월 18일 죽음의 공포를 이기고 척추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후 1년 6개월의 긴 좌식(휠체어) 생활이 외롭고 지치는 재활기간이었지만 아주 조금씩이나마 회복되는 감을 느끼며 주치의들이 불안해했던 재기의 희망을 한 번도 잃지 않았다. 2012년 후반기부터 아주 서서히 입식(걸음마)생활로 회복되면서 바로 새로운 도전과 희망의 삶을 계획했다.
투병과 재활을 통한 깨달음과 갑자기 많아진 시간을 더 이상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불편한 몸이었지만 서울대 보건대학원과 웰에이징시니어산업 고위과정을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마음의 숙제로 남아있던, 본인이 그 동안 하고 있는 일의 개념을 나름 정리하게 되었다.
즉, 한 사람의 노년을 조명에 볼 때 여러 각도의 작대로 재는 웰에이징이 있겠지만 ‘청박’이 추구해온 엑티브에이징 (건강한 노년)과 안티에이징(美, 자신감)으로 삶의 질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한 그 동안 강조되어온 진료패턴이 한마디로 의료분야의 한 웰에이징 작대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해 봄 다행히 그 동안 혼자서 낸 모에 적용하며 진료의 근거를 찾기 위해 갈구해온 기능의학 분야 학회가 창설되어 반가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기능의학학회에서 개설한 5개월의 심화과정도 즐겁게 이수했다. 이런 세월의 흐름이 오히려 그 동안 행보에 맞아 새롭게 하려던 엑티브에이징진료에 보강되어 진료 준비에 더욱 힘을 얻게 되었다.
이같이 긴 터널에서 나와
위로, 치유, 도전의 정신으로 새롭게 진료를 시작하면서 이러한 다양한 진료경험을 묶어 개념 있는 진료를 하고자하는 압축된 의미로 ‘웰에이징센터’로 병원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기존 진료실을 새롭게 진료할 기능과 동선을 고려해 리모델링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엑티브에이징과 안티에이징 진료로 ‘청박’ 고유의 웰에이징진료를 하는 곳인 웰에이징센터가 유병장수시대에서 무병장수시대로 바꾸는 진료의 한 축으로 우리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에이징리폼 시술과 안티에이징클럽 관리를 하는 안티에이징 진료는 그대로 한다.
그러나 이번에 좀 더 비중을 높이고자 하는 엑티브에이징 진료는 미력하나마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며 수면에 떠오르지 않은 뿌리의 치유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진정한 예방의학 진료를 하기 위해 환자들과 밀착하여 흐트러진 항상성을 바로잡아 질병을 예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전통적인 내과진료 경험과 하루가 무섭게 발전하는 각 분야의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면서 환자와 같이 고민하며 위로하고 치유하는 동네주치의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진료에 임하려 한다. 웰에이징센터에 대한 많은 응원을 기대한다.